일기라긴 쑥스럽지만

느닷없이 걸려온 걸쭉한 전화의 감동

단호박마왕 2009. 2. 15. 19:49

 

 

아침 7시 쯤이었나 보다.

사실 이 시간은 내겐 새벽이다-_-;;; 당연히 침대와 등 붙이고 콩쥐팥쥐를 하며 꿈나라를 헤매고 있었는데

전화가 왔다.

 

아.....뭐야.........벌써 아침인가???

 

잠결에 모닝콜인 줄 알고 꺼 버리고 다시 잤다. 잠시 후 또 울렸다.

 

우쒸..........전환가............?엥..........모르는 번혼데.........?? 063 이라구.........??

가만있자 063이면 전라북돈가....?? 아, 혹시..................??

 

 

퍼뜩 짚이는 곳이 잇어서 얼른 받았다.

 

"여보세요??"

수화기 너머에 반가운 목소리가 들렸다.

"XX이냐?? 할미다!!"

 

"앗 할머니~~~어쩐 일이세요?? 너무 반가워요~ 안녕하셨죠? 어떻게 전화를 다 주셨어요?"

 

"뭐여? 이 ㅁㅎㄴ이 어쩐 일? ㅈㄹ헌다~ ㅈㄷㅇㄹ 다 ㄴㅂ댄 겨?

ㅇ ㄴ 아!!! 집에 잘 갔으먼 전화쪼깨 혀라니께

ㅈㄱ ㅅ에 들어가 앉어 있으면서 전화 한 통 안 혔냐?? 할미 걱정헌다고 안 혔냐 이 ㅆㅂㄹㄴ!

아니 아침부터 이장 시켜서 ㅈㄹ혀서 전화혔는디 뭐 어쩐 일이여? 이 ㅁㅎㄴ아~ㄱ ㅅ 한 ㄴ!!"

 

ㅡ..ㅡ;;;;;;;;;;;;;;;;;;;;;;;;;;;;;;;;;;;;;;;;;;;;;;;;;;;;;;;;;;

아...할머니 아직 여전하시구나...ㅋㅋ 2주 전에 뵐 때랑 전혀 달라진 게 없으신 이 화통한 말투-_-;;

 

"할머니 죄송해요ㅜ.ㅜ바로 전화 드린다는 게 그만....건강하시죠??"

 

 

여행 막바지에 전라도에 들어섰을 때 일이다. 아직 낮이었지만 밤에 잘 곳을 먼저 물색하느라 마을을 지나

절로 갈 산길을 찾고 있었다. 그러다 문득 식신 단호박마왕의 눈에 태양보다 더 눈부시게 자체발광 하는 것이 보였으니....그것은 바로

 

까.치.밥.

이었다--;;; 별로 높지도 않은 가지에 세상에 가을부터 그대로 달려 있어서 너무너무 먹음직 해 보이는

대봉감이 달려 있는게 아닌가??? 그냥 지나칠 수가 없지...ㅡㅡ;;

 

주변을 둘러보고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배낭을 내려놓고 따려고 쌩쑈를 했다.

돌이랑 나뭇가지를 던지다가 도저히 조준이 안 돼서 나무를 타 보려고 버둥대고 있었다.

사실 나무를 타려고 시도해 보신 분들은 알겠지만...나무타기란 게 쉬운 게 아니다.

나무 가지만 다치게 해 놓고 다시 감을 노려 보고 있는데 뒤에서 누가 뒤통수를 후려쳤다ㅡㅡ;;

 

"뭐여?? 댁은 뉜데 넘의 감나무에 올라가고 그려? 사낸 줄 알았더니 여자네??"

 

"아 저기 거시기....뭣이냐 그게 말이죠.......죄...죄송해요 제가 배가 고파서-_-;;;"

 

"....................??-_-"

 

자초지종을 설명하였다. 무전여행 중인데 감을 보고 눈이 뒤집혔다고..ㅠㅜ 죄송하다고..

알고보니 이 분은 이 동네 이장님이셨다. 멀리 마을회관에 계시다가 나의 원맨쇼를 보시고 달려 나오신 거다.

 

감사하게도 이장님은 감은 안 따 주셨지만...^^;; 마을의 할머니 댁으로 나를 데려갔다. 절보다는 나을 거라고.

할머니의 성함은 이간난.....여든이 넘으셨다는데 성함은 갓 낳으셨다는..ㅡㅡ;;

아드님들은 서울에 사신다고 한다. 할아버지 돌아가시고 그냥 혼자서라도 고향에 사신다고...

그러나 할머니의 저 씩씩한 말투만은 정말 젊은이 못지 않았다..ㅋㅋ

 

"뭐여? 이런 천하의 ㅀㅁㅅ한 ㄴ 을 봤나...그럼 부모헌티 제대로 알리지도 않고 이 ㅈ ㄹ 허구 ㅆ 돌아댕기는 겨?  ㅈㅅ나간 ㄴ 일세........ 시상에 밥은 먹고 다니는 겨?저 ㅅㅍ봐라 사흘은 굶은 거 아녀...."

 

그날 난 할머니 댁에서 세 끼 배 터지게 얻어먹고 실컷 자고 빨래도 하고 간만에 호강했다.

할머니의 시래기국과 깍두기와 가마솥밥은 가히 천상의 맛이었다ㅡㅡb

대신 호들갑을 떨며 할머니를 주물러 드리고 설거지 청소 하는 건 잊지 않았다.

 

다음 날 일찍 신발끈을 맬 때 할머니가 눈물을 보이시며...달걀을 삶아 싸 주셨다...

물론 나도 같이 울었다. 아....이렇게 큰 은혜를 입고도 할머니의 외로움에 더 큰 불을 지르고 떠나는 나는 정말

할머니 표현대로 '몹쓸 년'이었다...

할머니는 전화번호를 적어 놓고 가라고 하셨다. ㅎㄹ자식들이 ㅈㄹ허는 세상에 조심하라고 말씀하시면서..ㅋㅋ

 

집에 잘 도착하면 전화를 드린다고 철썩같이 약속했는데.

이 미련한 ㄴ 은 그걸 잊고 있었는데....여든이 넘으신 할머니는 그걸 기억하시고 걱정하시다가

이장님을 시켜 내 손전화로 전화를 하신 거다...

 

아.....아침부터 너무 울어서 눈이 배구공만하게 부었었다.

할머니 죄송해요....꽃 피는 봄에 할머니 좋아하시는 고구마과자 사 갖고 내려갈게요....건강하세요...그 때까지...